20살, 대학교 1학년 때다. 동아리방에서 빈둥거리던 나에게 한 선배가 책 한 권을 던져줬다. “고등학교 땐 못 봤을 거야. 함 읽어봐.” 제목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첫 문장부터 짜릿했다. “A spectre is..
노약자석, 美德인가 惡德인가. 작년 10월,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약자(弱者)”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허리환자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빼앗기는 과정을 '처절하게' 그린 글이었다. 많은 분들이 추천과 댓글을 남겨주셨다...
한국이 받은 성탄 선물 - 메러디스 빅토리호
57년 전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암담했다. 연합군의 압록강 탈환 후, 중공군 개입과 동시에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기적도 함께 시작됐다. 12월 초, 후퇴명령이 떨어진다. 미육군과 해병대를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장진호 포위를 돌파, 흥남부두에 대기하던 함정을 통해 철수에 성공한다. 14000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도 함께 내려왔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지내던 우리의 역사요 실화다.
1950년 12월 흥남 부두
1950년 12월, 중공군의 2차공세가 시작되자 서부지역의 美 8군은 12월6일 평양을 내어주고 38선으로 철수했다. 흥남일대의 美 10군단은 앞 뒤가 포위된 상황이었다.
육로 철수는 불가능한 상황, 국군1군단과 함께 해안 교두보 구축을 시도했으나, 결국 12월8일, 맥아더 사령관은 흥남철수를 지시한다.
1950년 12월 22일 흥남부두, 연합군 장병 105,000명과 약 10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흥남부두를 메우고 있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바로 자유의 땅 '남한'이다.
피난민이 계속 늘어나자, 미군은 193척의 선박을 동원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등장한 배가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7600톤 규모로 제트연료를 싣고 부산으로 갈 계획이었다. 화물선이기 때문에 인원은 59명이 정원이었다.
화물칸에 피난민을 태운다고 해도 불과 천여명. 미군과 피난민, 그들에겐 악몽과 같은 12월이었다.
12월22일 밤 9시30분에 피난민들이 타기 시작했다. 자정무렵엔 이미 5000명이 탔다. 더 이상 들어설 곳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부두엔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주민들이 남겨져 있었다.
라루 선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태워라"
외부갑판을 비롯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엔 모두 다 태웠다. 다음 날 아침 11시10분, 승선이 종료됐다. 승선한 인원은 14000명. 승조원 정원의 230배가 넘었다.
적군의 공습과 포화에도 마지막까지 항구에 정박해 남은 피난민을 모두 구출했다.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배'로 기록됐다.
12월10일부터 24일까지 193척의 배가 흥남부두를 떠났다. 105,000명의 유엔군 병력과 98,000명의 피난민, 17,500대 차량, 35만 톤의 화물을 싣고서다.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의 부모님들은 새로운 삶을 얻었다. 불과 57년, 멀어야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인데 그 참극과 기적이 잊혀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고 슬프다.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 피란민들이 선창에 떼를 지어 있었다. 그들은 수레로 나르거나, 들거나, 혹은 끌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지고 나왔다. 그들의 옆에는 놀란 병아리들처럼 그들의 아이가 있었다.”
-레너드 라루 선장 (빌 길버트 ‘기적의 배’ 中에서)
그들이 적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특히 미 해군과 상선의 선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10만 명의 피난민이 구조를 요청하는 믿기 어려운 광경을 보고 그들을 안전하게 승선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어느 누구도 피난민들의 국적이나 정치 성향을 문제삼지 않았고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죄 없는 희생자들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런 것을 조사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구출해야 할 생명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피난민들을 탈출시키기로 한 결정의 현명함에 대해 나는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생명의 문제라는 것이 저의 확신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절대자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 불쌍한 사람들을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탈출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 알렉산더 헤이그 前 美 국무장관 (당시 네드 앨몬드 육군 10군단 사령관의 부관)
한 어린 아이가 줄을 타고 탑승하고 있다.
그저 전쟁이 지겹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슴아픈 현대전의 광경을 상상하거나 읽은 적은 있지만 이번 경험으로 저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갑판에 올라가 돌아다니면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서로 꼭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아기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고, 아버지들은 코트 속에 아들을 묻어 따뜻하게 해 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감정이 복받쳐 올라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제때에 피난민들을 데리고 흥남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떠난 후 24시간 안에 모든 미군이 그곳에서 철수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그들을 공산주의자들의 손에서 구해 냈습니다.5년 동안 공산주의의 지배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이 모든 고통을 견디고 그들로부터 달아나려 했다면, 공산주의 치하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당시 상급 승조원이었던 로버트 러니씨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발췌
57년 후 한국의 크리스마스, 그때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성탄을 맞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 자유를 향한 갈급함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행복엔 이유가 있다. 우리 자신에게 없다면, 우리 부모와 조상이 그 이유다.
2007년 12월25일, 참 행복한 크리스마스다.
자료 및 사진 출처 : http://www.meredithvictory.com/
배경음악 : Celine Dion "Happy Xmas (War i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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