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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부대’의 상식초월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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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석, 미덕인가 악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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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자살클럽

스물여덟의 책읽기 2008.08.16 14:43 Posted by 스물다섯

독일, 영국, 한국 남녀들의 삼각관계, 집단 따돌림과 선생님의 불신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 뒷산에서 자살한 여학생,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청소년, 십대 여학생들의 동성애와 커밍아웃…

요즘도 흔치 않은 일들이 7~80년 전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제목이 독특해 손에 잡은 <경성자살클럽>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KAIST의 전봉관 교수가 쓴 책으로, 일제시대 신문과 잡지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엽기적인 자살사건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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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여학생 사이에 동성연애가 유행했다.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 사건”, 청상과부 신여성 윤영애 자살 사건”, “평양 명기 강명화 정사 사건”, “고학생 문창숙 집단 따돌림 자살 사건” 등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사건•사고들이 경성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이 책에 기록된 사연들은 모두 실화며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저자는 근대 조선의 자살 사건을 다룬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단순하게 답했다. 바로 “근대 조선에는 자살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 신문 사회면에 자살 소식이 실리지 않은 날이 드물 정도로 많이들 자살했다고 한다. 저자에겐 ‘상처받는 사람이 남긴 유서’를 정리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입시 지옥의 탄생」

“개 다리가 몇 개냐?”

출제 예상 문제는 ‘국문(일본어)’이나 한글로 이름을 쓰는 것이었다. 면접관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6세의 보통학교 입시 지원자는 절망했다.

출제진의 상상력은 진화를 거듭했다. 1935년 한 공립보통학교 시험장에서는 100원권 지폐를 꺼내놓고 그것이 얼마짜리인지 맞히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당시 보통학교 교사 월급이 50원 내외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돈 있는 집안 자제만 선별할 수 있는 탁월한 발상이었다. 비난이 빗발쳤지만 확실한 ‘변별력’을 인정받아, 이 문제는 이듬해에도 출제되었다.

1920년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는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입시 전략이 필요했다. 경쟁률은 보통 2 대 1. 심하면 6 대 1을 넘기기도 했다. 세계 유일 전대미문의 초등학교 입학시험은 오로지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데 있었다. 식민지 정부 당국의 편의주의 사고는 초호화판 총독부 청사를 짓고 대규모 군대를 양성할 수는 있었지만 보통학교를 늘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1922년 해주에서는 보통학교를 탈락한 400여 명의 예닐곱 살 코흘리개들이 학교 운동장을 점거하고 ‘눈물 시위’를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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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 영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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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 입시 영어문제(동아일보 1930년 3월 21일자)



입시 지옥의 결정판은 단연 중등학교 입시였다. 열서너 살 먹은 학생들은 낮아도 4~5 대 1, 심하면 14~15 대 1의 살인적 입시경쟁으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해 실성한 학생, 낙제하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성 답안을 혈서로 작성해 제출하여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학생, 낙제 후 만주에서 새 출발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난감 권총으로 은행을 털려다 붙잡힌 학생, 낙제의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누나의 금비녀와 금반지를 팔아 술집 작부와 질탕하게 놀다 경찰에게 발각돼 ‘미성년자 끽연 및 음주 금지법’의 최초 희생자가 된 16세 학생 등이 있었다. 사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양잿물을 마시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고, 벼랑에서 뛰어 내리고, 다량의 칼모틴을 삼켜 자살하는 낙제생들이 속출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총독부는 주입식 교육을 철폐하고 계발교육을 실시해 입시 교육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 아래 전형 요소를 다양화하였으나, 결국 수험생의 부담만을 증폭시켰다. 또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는 관행을 고치기 위해 응용문제 출제를 금지했는데 문제가 너무 쉬워 ‘만점 중 만점’을 가려야 하는 소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자, 그리고 그녀를 막아선 시대」

1933년 7월 27일 오전, 스물셋 젊고 당찬 한 신여성이 칼모틴 한 움큼을 집어삼키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든다. 일 년 전만 해도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던 행복한 여성이었다.

남편은 다정한 데다 전도유망한 청년이었고, 부유한 친정에서는 번듯한 집까지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불행의 싹이 움트고 있었으니, 끝을 모르는 시부모의 욕심이었다. 시아버지는 아들 내외 몰래 신혼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맘대로 썼고, 시어머니는 둘을 이간질했다.

결혼한 지 5개월이 흘렀을 때 남편 정성진마저 빈혈로 쓰러졌고, 시어머니의 잘못된 사랑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윤영애는 당찼다. 남편을 잃었지만 장사를 할 생각을 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녀를 용납하지 않았다. 오빠의 단호한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죽음으로 몰려갔다.

“신여성의 삶은 대부분 불우했다. 조선 사회의 외모는 ‘신식’을 받아들였으나 내면은 여전히 ‘구식’인 까닭이었다. 사회생활에 성공한 여성은 가정생활에 실패했고, 가정생활에 성공한 여성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신여성의 삶은 가정과 사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절반의 실패’가 예정된 삶이었다.” - 61쪽


10가지 충격적인 자살사건을 정리한 후 저자의 결론은 명료했다.

“그래도 자살은 아니다”



경성 자살 클럽 - 6점
전봉관 지음/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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