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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부대’의 상식초월 기자회견

20살, 대학교 1학년 때다. 동아리방에서 빈둥거리던 나에게 한 선배가 책 한 권을 던져줬다. “고등학교 땐 못 봤을 거야. 함 읽어봐.” 제목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첫 문장부터 짜릿했다. “A spectre is ..

노약자석, 미덕인가 악덕인가.

노약자석, 美德인가 惡德인가. 작년 10월,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약자(弱者)”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허리환자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빼앗기는 과정을 '처절하게' 그린 글이었다. 많은 분들이 추천과 댓글을 남겨주셨다...

노약자석, 미덕인가 악덕인가.

스물다섯의 경향 2008.08.19 16:40 Posted by 스물다섯


노약자석, 美德인가 惡德인가.

작년 10월,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약자(弱者)”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허리환자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빼앗기는 과정을 '처절하게' 그린 글이었다. 많은 분들이 추천과 댓글을 남겨주셨다.

오늘 지하철 1호선에서 한 광고를 발견했다.

“경로석이 아닙니다 50년후 당신을 위한 예약석입니다”

다시 문득 떠오른 생각.
“왜 또 ‘노약자’가 아닌 ‘노인’일까.”

경로석 -> 예약석으로 바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광고작품이긴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게 쓰여진 카피를 읽어보니 “그냥 비어있는 좌석이 아니라 나이들고 몸이 불편한 분을 위해 예약된 자리”라며 “지금 당신의 작은 미덕이 수십년 뒤에 당신을 위한 미덕으로 돌아올 것”이란 내용이었다.

2005년 공익광고대상 장려상을 받은 작품으로, 얼마 전부터 1호선 지하철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광고를 보면 ‘예약석’이란 팻말 뒤에 노약자석 표시 그림이 보인다. 환자, 노인, 임산부 모습이다.

1년 전 안타까웠던 경험이 다시 한 번 되살아난다. 우리나라에서 ‘노약자’란 곧 ‘노인’뿐인가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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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박희정 출처:「일다」

대중교통 노약자석은 노인전용석? <박정호 기자>
노약자석 앉은 임산부에게 행패…네티즌 격분 - <세계일보>
노약자석은 누가 앉는 자리인가? - <메리츠>
'노약자석'을 '약자석'으로 바꿔야 한다 - <디테일로그>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장애’ - <일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노약자'의 국어사전 의미는 "늙거나 약한 사람(老弱者)"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분명 '약한 사람'이 포함돼있다.

지하철 공사는 왜 이런 광고를 내걸었을까. 요즘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임산부는 더더욱 볼 수 없다.

나같이 ‘보이지 않는 병’을 앓은 사람, 임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임산부, ‘그날’이 다가온 여성들, 힘든 과로로 심하게 지친 직장인...

그들은 ‘노약자석에 앉을 권리’가 있다.

광고 내용이 맞다. 그 자리는 ‘경로석’이 아니다.

'50년후를 위한 예약석'은 더더욱 아니다.

노인을 비롯해 우리 주변의 약자, 즉 장애인과 임산부 등을 위한 자리다.

광고의 의도는 참 좋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광고는 좀 아닌 것 같다.

더이상 약자(弱者)를 악자(惡者)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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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약자(弱者)
http://trend25.com/2630612


병원에 갔다.

부위는 허리, 장거리 비행 몇 번에 안 좋던 허리가 완전 '나가'버렸다. 걷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누우면 편한가. 그렇지도 않다. 무조건 아팠다.

국내에서 제일 좋다는 허리병원을 찾았다. 이름있는 의사들은 몇 달이 걸릴지 몰라, 일반진료로 접수했다.

예약시간 늦지 않으려 일찍 가서 기다렸다. 힘겹게 도착한 병원, 빨리 끝내고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랄까. 자기 몸 아프면 무조건 제일 큰 병원 가서 의사와 최대한 ‘긴 시간’ 진료받고픈 게 사람의 마음이자 환자의 욕심이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고대했던 의사와의 ‘獨對(독대)’다. 할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앞에 앉으니 떠오르지 않는다.

의사가 말했다.

“너 같은 환자 오래 볼 생각 없다. 난 좀 더 심각한 환자를 만나 그를 ‘살릴’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가렴.”

물론 표정으로 말했다.

만족도 ‘0’의 진료를 마친 후 병원을 나섰다. 이상했다. 의사를 만난 후 허리가 더 아프다. 택시를 잡으려다 마침 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온다. 헛돈 쓸 필요 있나 하는 생각에 탔다.

자리가 보이자마자 앉았다. 허리환자에게 좌석이란 ‘편안’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의 본능이다. 안 그래도 난폭한 서울버스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춤추는 행위는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생존’을 확보한 뒤, 허리 아픈 걸 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척추도 덜컹했다. 통증이 더했다. ‘택시 탈걸.’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택시 타는 절차 자체가 더 큰 부담이다.

이런 비참한 생각을 하며 가던 중,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에 탔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쳐다봤다. 내 앞에 와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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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1. 힐끗 둘러보니, 버스는 만석. 그리고 여긴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겹도록 봤던 ‘노인공경’. 이럴 때 써먹으라고 교과서에 실렸으리라.
  2. 내가 앉은 자리는 ‘내리는 문’ 반대편의 싱글 좌석. 왼쪽 위로 노란 딱지가 보인다.
  3. “노약자석”
  4. 옐로우 카드다. 하나 더 먹으면 퇴장까지 당할까. 내 앞은 몰라도 내 뒤의 사람들은 모두 내 뒤통수를 보고 있으리라.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할아버지의 헛기침까지 더해진다.

“어험”

헛기침 뒤에 나온 말은 분명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물론 표정으로 들었다. 조금 전 봤던 재수 없는 의사의 표정과 오버랩 된다. 젊은 나이에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讀心術(독심술)’까지 갖게 될 줄이야. 그런데 그리 기쁘지가 않다.

5분이나 지났을까. 마치 5시간은 지난 것 같다. 나의 뇌는 ‘후회’와 ‘계산’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상황 파악했으면 바로 잠자는 척 했어야지’라는 ‘후회’와 앞으로 남은 정거장과 내 통증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계산’이다.

거기에 할아버지와 나의 팽팽한 기 싸움도 전개되고 있었다. 이 게임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그에겐 버스 승객 전부라는 응원단이 있고, 난 혼자다. 홈팀 어드밴티지가 센 구장에선 해봐야 두 배로 힘들 뿐이다.

6분째 되는 순간, 나는 백기를 들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앞으로 30분은 더 가야 하는데. 병원 자체를 오는 게 아니었다.

완승을 거둔 할아버진 얼른 자리를 꿰찼다. 역시 대한민국이 좋다는 듯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어서서 보니 내 뒤에 앉은 사람은 이미 한잠 푹 자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일어서서 보니 금방 잠 깬 표정이다. 他人의 양보와 동시에 잠을 깬다. 신기하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生死의 갈림길에서 死를 택했던 기억을 길게 갖지 않으려는 뇌의 본능이리라.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꾸준한 치료로 몸은 꽤 좋아졌다. 버스에 서서도 꽤 오래간다. 당연한 거 아닌가 하겠지만, 나에겐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퇴근길에 버스를 탔다. 아무 생각 없이 서서 DMB 뉴스나 보고 있었다. 할머니 한 분이 탔다. 내 옆에 섰다. 그리고 어깨에 든 짐을 앞에 털썩 내려놓았다. 내 앞엔 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당연히 일어서야 할 타이밍이다. 할머닌 어깨까지 두드린다.

그런데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잠자는 척도 안 하고, TV보는 척도 안 했다. 그저 앞을 당당하게 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같았다.

‘버릇 없는 젊은이’

문득 1년 반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토록 답답했던 내 심정은 어느새 사라졌고, 그저 나도 제3자의 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생각했다.

‘허리가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있겠지.’
‘다른 사정이 있을 거야.’

모든 버스 승객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다행이었으리라. 뒤에 앉은 건장한 남자가 일어서서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하면 마무리 된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 할머닌 아가씨 자리 옆 창문까지 열었다. ‘서 계시니 덥다’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외치고 있다.

“당장 일어나서 양보해.”

물론 표정으로다. 그녀도 1년 전 나와 같이 ‘讀心術’이 생겼나 보다. 갑자기 짐을 챙겨 일어선다. 여기까지 했다면 할머니의 ‘판정승’이었다. 역시 홈팀 응원단 덕택이다.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쉬다가 바닥에서 뭔가를 줍는다. 아가씨가 뭔가를 떨어뜨렸나 보다. 얼핏 보니 국제학생증이다. 그 할머니는 학생증의 사진과 멀리 도망간 그녀 얼굴을 몇 차례 비교한 후, 그녀를 큰 소리로 부른다.

“아가씨! 이거 떨어뜨렸어.”

할머니의 KO승이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학생증을 챙겨 자리를 떴다.

노약자석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老弱者(노약자)란 老人과 더불어 弱者도 포함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노인 앞에 앉아있는 한 젊은이가 보인다면, 그저 속으로 욕할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 있게 일어서자. 그러면 노인과 약자를 모두 구한 건장한 청년이 되리라.

노약자석

출처 : 미디어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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