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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부대’의 상식초월 기자회견

20살, 대학교 1학년 때다. 동아리방에서 빈둥거리던 나에게 한 선배가 책 한 권을 던져줬다. “고등학교 땐 못 봤을 거야. 함 읽어봐.” 제목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첫 문장부터 짜릿했다. “A spectre is ..

노약자석, 미덕인가 악덕인가.

노약자석, 美德인가 惡德인가. 작년 10월,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 약자(弱者)”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허리환자가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빼앗기는 과정을 '처절하게' 그린 글이었다. 많은 분들이 추천과 댓글을 남겨주셨다...

출구조사 결과로 대한민국이 떠들석 했던 19일 오후 6시, 이회창 후보의 사무실에 갔습니다. 현장 분위기 한 번 보고 싶어서 같습니다.

이미 결과가 예측된 상황에서, 정신 없는 당선자 사무실 보다는 정치의 쓴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물론 가깝다는 이점도 꽤 작용했죠.

남대문 단암빌딩 14층,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있더군요. 사진 몇 컷 찍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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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30분 경 사무실 내부 전경입니다. 기자들은 대충 자리 잡았지만 조금은 썰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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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점점 많아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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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던 앞자리들이 슬슬 채워집니다. 심대평 前후보까지 왔군요. 그가 제일 앞 가운데 앉는걸로 봐서 이회창 후보는 더 늦게 올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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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에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 된 직후 모습입니다. 아주 침통한 분위기군요. 이회창 후보의 표정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후 나와서 인터뷰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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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분위기를 전하는 각 방송사 아나운서들입니다.


이상, 3등 후보 사무실에서 본 대선 날 저녁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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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들이여, 꿈에서 깨어나라.

대선은 끝났다. 壓勝이다. 다른 한 쪽은 壓敗다. 투표한 이의 절반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1000만 넘는 사람이 그의 이름에 도장을 찍었다.

지역주의도 크게 할 말이 없다. 경상도 표 다 빼도 이명박의 100만 표 승리다.

블로고스피어에서 그는 철저하게 군소후보였다. 문국현, 정동영, 권영길, 그리고 허경영…
한 5등쯤 됐겠다. 그 5등이 530만 표차로 1등 했다. 역대 최대 차이다.

사람은 누구나 들춰보면 뭔가 나오게 돼있다.
그 깨끗하다던 후보들도 막판 되니 서로 흠집잡고 표 몰아달라고… 참 가관이었다. 사외이사가 어떻고, 기획입국설이 어떻고, 진위와 상관 없이 다 똑같은 모습이었다. '대통령병' 걸린 모습 말이다.

개인적으로 性惡說을 믿는다. 인간, 세상, 국가…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블로그들이여, 그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쉽게 세상을 얘기한다. 밖에 좀 나가라. 세상을 보고 느껴라.

주변의 몇 사람 얘기만 듣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난 정치나 경제는 잘 모르지만’하면서 대충대충 끄적거리지 말고, 쌍욕으로 자신의 블로그를 더럽히지 마라.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해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확하게 분석해라. 당신의 수준 낮은 푸념이 물을 흐릴수록, 상대방은 더욱 강성해지리라.

좀 더 이기적으로 행동해라. 민주주의 국가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 지지하면 된다. 그뿐이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총선이 있다. 직접 운동하거나, 소중한 한 표를 보내라. 블로그 활동을 통해 열심히 유세해라. 다 좋다.

BBK가 의심스럽다면 정당한 논리에 근거해서 비판해라. 특검을 지지하든, 탄핵을 찬성하든 자유다. 하지만 상황 판단은 좀 하고 해라. 언제까지 유치원에서 배운 지식만 써먹으면서 살 텐가.

누가 모르는가. 사람은 정직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 다 안다. 당신 자식도 알고, 조카도 알고, 코흘리개 동생도 안다. 한나라당도 알고, 당선자도 안다.

정치판의 선동에 이리저리 휩쓸려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외치는 어리석은 군중이여. 당신의 순진한 생각이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아는가.

차가운 두뇌(cool head)와 뜨거운 가슴(warm heart)을 가져라. 제발 그 반대론 하지 말자.

파티는 끝났다. 현실로 돌아오라.
블로거들이여, 꿈에서 깨어나라.

2007/11/21 - [스물다섯의 경향] - 내가 원하지 않는 블로그
2007/12/17 - [스물다섯의 경향] - 한나라당, 개가 나와도 대선 승리? - 英 로이터

2007/11/07 - [스물일곱의 세상] - 현장에서 본 이회창 출마 선언
2007/11/06 - [스물다섯의 경향] -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초현실주의 대선정국 관전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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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낯설지 않은 미수다 대선

스물다섯의 경향 2007.12.18 19:31 Posted by 스물다섯

결코 낯설지 않은 미수다 대선
고용, 성장, 복지, 포퓰리즘, 선심성 공약... 빠진 게 없는 '미수다 대선'

잠이 안 왔다. TV를 켜니 예전에 종종 보던 ‘미녀들’이 등장한다. 대선 이틀 앞둔 뒤숭숭한 마음에 한 번 봤다.

‘간만에 보니 많이 바뀌었군.’

꽤 안 보긴 했나 보다. 그 유명하다는 자밀라도 어제 처음 봤다.

우즈벡으로 고무장갑 수출하겠다, 성형수술 시켜주겠다… 독특한 공약들이 나오는 가운데, MC 남희석의 제안으로 ‘모의 대선’이 시작된다.

후보는 세명. 일본의 사유리, 남아공의 브로닌, 캐나다의 도미니크였다. 이런 저런 공약을 발표하는데, 처음엔 그러려니 하면서 지켜봤다.


미수다

출처 : 마이데일리 / KBS 캡쳐



그런데 점점 재미있어진다. 의견이 갈리는 게 꼭 현실 정치와 비슷한 모양.

우선 도미니크의 공약을 보자.

1. 새 멤버를 받지 않겠다. (고용안정)
2. 노조를 만들겠다. (노동권보장)
3.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겠다. 점심은 뷔페다. (생존권보장)
4. 녹화 끝나면 벤으로 귀가시켜주겠다. (복지개선)
5. 매주 미녀 각자의 나라에서 해외 촬영하겠다.
(인기영합 공약)

얼토당토않지만 있을 껀 다 있다.


미수다

출처 : 마이데일리 / KBS 캡쳐


 
그럼 브로닌의 공약을 보자.

1. 남아공에서 학생 회장 했다. (능력과 경력강조)
2. 새 멤버는 필요하다. 같은 사람만 하면 재미없다. (성장중심)
3. 불편한 의자를 쇼파로 바꾸겠다. (노동환경개선)
4. 간식으로 카푸치노를 주겠다. (실용복지)
5. 장동건을 만나게 해주겠다.
(인기영합 공약)

뭔가 어설프게 얼추 들어맞다. 풍기는 이미지도 비슷하다. 한쪽은 말을 잘하고 다른 한쪽은 어눌하다. 서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고 상대방의 공약을 비난한다. BBK 비슷한 의혹만 붙으면 제대론데, 아쉽다.

비교적 ‘군소’후보인 사유리의 공약도 재미 있다.

1. 남자친구 생기면 쫓아낸다. (...)
2. 나보다 먼저 결혼하면 벌금 내야 한다. (...)
3. 내 전화번호를 주겠다. (...)
4. 도미니크 공약 마음에 든다. (...)

어이 없는 공약이다. 횡설수설 하는 게 몇몇 후보들의 공약을 떠오르게 한다. 공약의 성격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기억에는 쉽게 남는다.

미수다 대선의 결과는 도미니크의 승리로 끝났다. 1표차의 박빙 승부였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로 볼땐 현실과 꽤 차이 나는 결과다. 그래도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미수다

출처 : 마이데일리 / KBS 캡쳐



끝난 후 남희석의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처음부터 도미니크를 지지 했었다. 대선 끝나면 줄 잘 서야 한다.”

현실 정치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내일 저녁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난 처음부터 ●●●을(를) 지지했었다”라고 할지 궁금하다.

당선 소감도 흥미롭다.

“다음주에 일본에서 촬영하겠다”며 큰소리를 친 후 “여기 세트 조금만 바꾸면 일본 같다”고 해 公約이 空約 되는 '완벽한 현실정치'를 구현해냈다. 그녀가 존경스러울 정도다.

정신 없는 판타지 대선 정국… 이런저런 별 잡생각이 다 드는 하루다.

누구는 지방까지 간다고 하고, 누구는 왕복 몇 시간 가서 투표한다고 하는데,
정말 뽑고 싶은 사람도 없을 뿐더러, 전입신고.부재자신고가 늦어 멀리 가지도 못 한다.

안타깝지만 소중한 한 표 포기하련다. 그래도 뭔가 후련한 이 기분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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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아웃사이더

스물여덟의 책읽기 2007.12.18 16:05 Posted by 스물다섯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 <역사의아침·334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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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벽에 갇힌 조선의 「아웃사이더」 12人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양보할 수 없는 소신 때문에 순탄치 않은 삶을 선택한 선비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李鈺(이옥)은 정조가 文體反正(문체반정)을 시행했을 때, 과거시험 답안지를 소설 문체로 작성해 「반성문」이라는 수치스런 벌을 받았다. 자신의 운명과 문체를 맞바꾼 소신파다.

沈魯崇(심노숭)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글을 평생 동안 썼다. 요즘이라면 멋진 「로맨티스트」로 남겠지만 당시엔 「못난 남자」로 손가락질 받을 짓이었다.

이 외에도 손자의 육아일기를 남긴 李文楗(이문건), 친구의 죽음에 과거를 포기한 朴趾源(박지원), 극심한 효심으로 소설「九雲夢(구운몽)」을 지은 金萬重(김만중) 등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갔던 조선 남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이들의 소신이 항상 바람직할 수만은 없지만, 신념을 지키고자 한 마음은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그들이야말로 다른 누군가의 삶이 아닌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소신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 6점
노대환 지음/역사의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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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스물여덟의 책읽기 2007.12.18 15:57 Posted by 스물다섯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정두희·이경순 엮음 | <휴머니스트·460쪽·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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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倭亂(임진왜란)은 동아시아를 뒤흔든 16세기 최대의 전쟁이었다』

韓·中·日 삼국 모두 알고 있지만, 각기 다르게 알고 있는 역사, 임진왜란에 대해 새로운 서술을 시도한 책이다.

이 전쟁을 칭하는 삼국의 공통어는 없다. 한국은 「壬辰(임진)년에 일본인들이 일으킨 난리」라 부르고, 일본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란 의미로 「히데요시노 조센 신랴쿠(秀吉の朝鮮侵略)」라고 칭한다. 중국은 조선을 구해줬다는 뜻의 「유안 차오시안(援朝鮮)」이라 부른다.

전쟁의 명칭뿐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르다. 한국은 이순신과 의병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한 抗爭史(항쟁사)에 초점을 모았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은 대륙 침략의 선구적 업적으로 미화한다. 중국은 조선을 도와 일본을 패퇴시켰다 하여 大國主義(대국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서강대 국제한국학센터가 2006년 6월 경남 통영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의 결과물이다. 세계 각국의 역사연구들이 참가해 다양한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분석했다.

책을 엮은 정 鄭斗熙 교수는 『21세기 현대 동아시아 정세는 400여 년 전 이 전쟁에 대한 확대된 시각과 역사적 통찰을 요구하고 있다』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적극적 대안 모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 8점
정두희.이경순 엮음,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 기획/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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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로이터, “한나라당, ‘개’가 나와도 대선 승리?”

정치 분석가의 ‘농담’
“現 정권의 서툰 경제 정책과 집값 폭등이 앙심 불러와”

영국 로이터 통신이 ‘이명박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오늘(17일) 서울발로 보도된 “한국 대선 임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 정치 분석가의 농담(joke)을 인용, “보수진영은 개가 출마해도 승리할 것(conservatives could put up a dog and still win)”이라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現 정권의 서툰(botched) 경제정책과 집값 폭등이 좌파정권에 대한 증오가 됐다”며 보수 진영의 승리 가능성 이유를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또한 현대건설, 서울시장 등 이명박 후보의 이력과 함께 그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소개, 앞으로 對北관계 및 對美•對日 관계의 변화를 예측했다.

'불도저(the bulldozer)'란 별명과 그의 추진력(can-do style), '경제대통령(economy president)' 등의 이미지도 함께 소개했다.

가장 유력한 경쟁자(main challenger)인 정동영 후보에 대해선 “현 정권에서 일했다는 오점을 씻기 어렵다”며 정후보의 어려운 현실을 분석했다.

유류세 인하와 의료비 감면 등의 포퓰리즘적인 공약과, '행복은행'과 같은 막연한 정책을 정후보가 고전하고 있는 원인으로 분석했다.

현재 공방이 치열한 BBK 사건은 “그의 부정혐의에 대한 집요한 공세(hounded)가 계속되고 있다”며 대선뿐 아니라 내년 총선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전망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 “이미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투표할 사람을 정했기 때문에 비디오 내용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며 “이명박이 당선되더라도 그의 도덕성으로 인해 많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 스물다섯의 경향 http://trend25.tistory.com


외신기사 읽다가 재미 있어서 단신기사 형식으로 번역해 봤습니다.

17일 18시 현재 국내 언론까지 보도가 되진 않았군요.  (스물다섯의 국내 최초보도입니다. : )

혹시 오역이 있다면 지적해 주세요.
원문 내용상으로는 대충 이명박을 밀어주는 기사 같기도 한데요,

그나저나, 이 기사대로라면, 보수진영 후보가 떨어지면 정말 ‘개만도 못한’ 처지가 되겠군요.

이번 대선, 막판까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 )

참고로 전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없습니다.


.
하루가 지나니 이 기사가 꽤 많이 올라왔습니다. ㅎㅎ 그래도 제가 첨 올렸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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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로이터, “한나라당, 개가 나와도 대선 승리?”




기사원문 : South Koreans head to the polls


2007/11/06 - [스물다섯의 경향] -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초현실주의 대선정국 관전포인트
2007/11/07 - [스물일곱의 세상] - 현장에서 본 이회창 출마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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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된 백건우

『베토벤의 음악에 몰입하려면 「들을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프랑스의 음악학자 레미 스트리케 교수의 말이다. 연주할 사람이 따로 있고, 들을 만한 사람이 따로 있다. 연주할 사람은 그렇다 해도, 관객의 입장에서 과연 들을 만한 사람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일단 객석에 앉았다. 무대 한가운데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한 중년 신사가 무대 위에 오른다. 합창석까지 가득 찬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자리에 앉았고, 묵직한 손을 건반 위에 올려 놓았다.

다시 한 번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과연 들을 만한 사람인가?』

짧은 순간, 베토벤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이름만으로 위대한 음악가. 청각장애와 외톨이로 말년을 보낸 비운의 작곡가. 고뇌하는 듯한 표정의 초상화와 그가 남긴 수많은 사연들. 「월광」·「운명」·「황제」…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이다.

머릿속에 고정된 이미지로 그의 연주를 소화하기란 무리다. 베토벤 소나타 연주를 직접 듣는 것도 처음이다. 답은 분명했다. 『들을 만한 자격이 없다』

그 순간 연주가 시작됐다. 빠른 선율이 큰 홀을 가득 메웠다. 「이성과 감정」을 상징한다는 1악장이 관객들의 머리와 가슴을 오갔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저 잡생각으로 흘러 보낼 순 없었다. 베토벤의 「들을 자격」이 절실했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상상했다. 봄비 내리는 창 밖을 그려봤다. 머나먼 설원을 회상했고, 19세기 초 빈의 노을 진 강변을 떠올렸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그의 연주를 들으려 했다.

쉽지 않았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역사적 연주가 귀에서만 맴돌 뿐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베토벤과 제대로 「교감」하겠다던 다짐은 이미 먼 나라 일이 돼버렸다.

백건우


어느새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27, 28번 두 곡이 어느새 끝나있었다. 위대한 거장과의 호흡은 그토록 어려웠다. 연주는 명쾌했으나 생각이 잡스러웠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2부 공연이 시작됐다. 연주할 곡은 29번 Bb장조 Op.106, 일명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다. 해머로 두드린다는 뜻으로, 베토벤 본인이 『내가 죽은 뒤 50년은 지나야 연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곡이다.

박수와 함께 신사가 다시 입장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적막이 흐른다. 교감의 욕심은 이미 내려놨다. 무심코 그의 눈을 봤다. 순간 한 단어가 떠오른다.

「신뢰」

한 단어가 머릿속과 온 몸을 지배했다. 신뢰, 믿으라는 것이다. 베토벤을 믿었다. 그리고 앞에 앉아있는 「건반 위의 구도자」를 믿었다. 그의 피아노를 믿었고, 그가 올라선 무대를 믿었다. 조명을 믿었고, 음향을 믿었다. 함께 호흡하는 관객을 믿었다. 다시 연주가 시작됐다.

작곡가와 관객 사이엔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위대한 작곡가와 무지한 관객이 만날수록 그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그 아득한 거리를 채우는 이가 바로 연주자다. 거장과 관객의 교감은 결국 연주자의 몫이었다.

백건우는 지금 그 먼 거리를 홀로 채워가고 있었다. 손 마디마디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베토벤의 자취를 찾기 위해 유럽을 돌고 돌았던 그다.

베토벤은 「함머클라비어」를 완성한 후 친구에게 『이제 작곡을 할 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백건우는 몇 해 전 인터뷰에서 『이제 피아노를 다룰 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제 거장과 관객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몸 속을 타고 도는 피가 문득 떠올랐다. 그의 건반 위 「해머질」과 함께 심장이 고동쳤다. 부드러우면서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그의 선율이 혈관을 통해 몸 구석구석으로 전달된다. 그의 손이 멈추면 심장이 멈췄고, 그의 정적은 곧 모두의 苦待(고대)였다.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머리와 가슴이 답답함으로 가득 찼을 때, 몸 속의 피는 어느새 연주자를 따라가 베토벤과 대면하고 있었다.

45분의 연주가 순식간에 끝났다.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관객들이 다음 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우러나는 기립박수가 5번의 커튼콜을 불렀다.

白建宇. 그는 이미 베토벤이 돼있었다. 베토벤이 죽은 57세 때부터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그는 올해 62세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7회째의 공연을 마쳤다. 내일이면 32곡 전곡을 완성한다. 讚辭(찬사)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베토벤이 된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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